2009/11/15 14:53

[책] 헤밍웨이 걸작선 -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 잡동사니


나의 기억에 '노인과 바다'는 엄청나게 두꺼운 분량에 글씨도 깨알같은, 압도적으로 현학적인 책이었다. 왜 그랬을까. '노인과 바다'는 잠 잘때 베개 대신으로 쓰니 어쩌니 하는 우스개소리 때문이었을까. 막상 책을 주문해서 받아들고 보니 작고 얄팍하다.

이야기도 간단하다. 대충 알고 있는 줄거리 그대로다. 늙은 어부가 돛단배 하나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가 거대한 물고기를 하나 잡고, 허망하게도 상어에게 모두 뜯기고 뼈만 남겨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바다, 노인, 물고기가 전부다.

그런데 어째서 이 짤막하고 단순한 이야기에 이토록 거대한 감동을 받는 걸까? 삶을 은유하는 고기잡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형제애, 산티아고 노인이 보여주는 승리이자 패배이며, 패배이며 동시에 승리인 생의 역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한 때는 캄피온 산티아고라 불리웠던 노인, 그러나 그는 이제 노쇠했고 84일이나 고기를 낚지 못해 '살라오'라 불린다. 고기를 낚지 못하는 어부. 생은 가차없다. 그러나 삶의 위대함은 절망에 있지 않다. 그는 어부니까 매일 낚시를 나간다. 그리고 그에게 바다는 고난의 원천이 아니라 어머니이자 동반자이고 삶의 거대한 터전이다.

84일의 긴 인내 끝에 마침내 잡은 거대한 물고기. 며칠 간의 사투-말 그대로 사투-끝에 그는 물고기를 배 옆에 비끄러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곧이어 피냄새를 맡고 들이닥치는 상어 떼와 그는 다시 한 번 사투를 벌인다. 작살, 칼, 곤봉, 키의 손잡이까지 뽑아내 그는 상어를 수도 없이 쫓는다. 그러나 남은 것은 다친 손과 망가진 몸과 이제는 조류를 타고 밀려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에 불과한 뼈 뿐이다.

바다처럼, 삶은 그 안에 무수한 고기들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때론 거친 격랑을 쳐올리고 상어 떼를 보낸다. 인내하고, 경외하고, 그러면서도 기세등등하게 맞부딪치는 이 늙은 노인에게서 삶을 살아가고 자연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운다. 비록 그 삶의 끝에 남는 것이 쓸모없는 뼈다귀 뿐일지라도. 어쩌면 노인은 다시는 낚시를 나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소년 마놀린 곁에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지도 모른다. 84일만에 마주한 행운을 피나는 노력 끝에 손에 쥐고도 허망하게 놓아야 하는 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삶의 위대함은 결과에 있지 않다. 그 모순과 불합리를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버텨나가는 과정, 거기에 찬란함이 있다.

5문장 안으로 요약될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끌고 가는 생동감 넘치는 문체도 매력적이지만 산티아고가 물고기와 대치하며 그를 대하는 방식 또한 흥미로웠다. 동양적 자연관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거기에는 그 나름의 자연에 대한 존중과 경탄이 보인다. 동양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 보고 낮추는데 반해 서양의 사고는 확실히 다르다. 어디까지나 동등한 입장에서 우수한 능력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요즈음은 그마저도 없어지고 있지 않나, 씁쓸하기도 했다. 전지구적으로 말이다.

바다를 생각할 적마다 노인은 언제나 '라 마르'(la mar)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페인 말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바다를 욕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도 바다는 여성이라는 느낌이 그들의 말투에서 사라진 일은 없었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낚싯줄을 뜨게 하려고 찌를 사용한다든지, 상어의 간으로 돈을 벌어 모터 보트를 사들인 작자들은 '엘 마르'(el mar)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바다란 투쟁의 상대요, 작업장인 동시에 적이 되곤 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했다. 온갖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작가가 그의 부유한 새 아내와 아프리카 여행중 부상을 당해 죽어가는 과정을 단편적으로 그리고 있다. 헤밍웨이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는데 책 표지의 안내말을 참고하면 이 작품 속 작가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네 차례나 전쟁에 참전하고, 복잡한 결혼 경력에, 사냥, 투우, 낚시 등 남성적인 취미를 즐긴, 상당히 호탕하고 야성적인 성격. 약동하는 육체의 에너지와 삶과 죽음의 긴장관계에 경도되어 있었던 듯, 헤밍웨이는 결국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 속에서도 작가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져 가며 눈 덮힌 킬리만자로 산 위의 고독한 표범을 떠올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표범의 강인함, 고독함에 자신을 투영하고 싶었나 보다. 외향적이며 다분히 동적인 이런 사람이 섬세하게 언어를 가다듬어 글을 쓰다니... 글쓰기란 생각보다 정적인 활동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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