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9 20:26

[책] 사형장으로의 초대 잡동사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독후감을 쓰려고 보니 그의 책을 하나 더 읽은 것이 기억이 났다. 시간상 이것이 먼저이니 이것부터 쓴다.

이현우씨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들을 때 나보코프가 주제로 다루어지진 않았으나 몇 번 이름이 언급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그 때까지 나보코프란 작가 이름 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롤리타'의 작가라기에 새겨들었던 듯 하다. 나는 '롤리타'하면 로리타 콤플렉스란 용어의 배경이 되어준 작품 정도로밖에 알지 못했고 그저 소아성애라는 충격적 설정 때문에 세간에 회자가 된 변태외설소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나보코프에 대한 언급이 나오길래 놀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에 구경가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사두었던 것.

두껍지 않고, 소설이니까 기분전환겸, 이라는 생각으로 작년 학기 초에 학교에서 읽었는데 열심히 미간을 찡그러뜨려야만 했다. 환상이라고 해야하나, 초현실주의라고 해야 하나, 혹은 학교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가르칠 수도 있겠다. 여튼, 일반적인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철저히 주인공의 의식에 따라 진행되는 이 소설은 기본적인 얼개말고는 모든 게 뒤죽박죽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어디까지가 실재, 혹은 실제이고 어디부터가 환상 혹은 꿈인지 알 수 없다. 처음엔 구분지으며 읽으려 노력했으나 결국 무의미한 짓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으니.   

소설은 주인공이 사형을 언도받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사형이 집행되는 날로 끝이 난다. 이 소설에서 명확한 것은 아마도 시작과 끝밖에 없는 듯 하다. 주인공 친친나트C는 19살에 유치원 교사로 발령받았고 마르핀카와 결혼을 했다. 마르핀카는 그의 아이가 아닌 아이들을 낳았고 30살의 작가인 그는 '투명한 영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형을 언도받고 거대한 요새에 홀로 갇히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경이로울 정도로 위험을  판별하는 데 능해진 친친나트는 자신만의 어떤 특별함을 숨기기 위해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광선을 통과시키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한순간 방심하게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투명한 영혼인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장애물인 것 같은 기이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그는 어쨌건 비쳐보이도록 가장하는 법을 익혔으며 이를 위해 광학적 속임수와 같은 복잡한 체계에 의지했다. 그러나 한 순간 그는 깜빡 잊고 자기가 교묘하게 빛을 비추어 영혼이 평면으로 보이도록 조작해 놓았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바로 그때 경보가 울려퍼졌다. 놀이가 한창일 때 그의 동급생들은 그의 시선이 선명함과 관자놀이의 하늘색이 교활한 눈속임이며, 사실 친친나트는 블투명하다는 사실을 감지한 듯 갑자기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감옥에는 소장이자 간수인 로디온이 그를 감시하고 있다. 소설 첫 부분에서 난데없이 친친나트와 빙글빙글 왈츠를 추어 날 놀라게 한 간수 로디온이 곧이어 나오는 소장 로드리그 이바노비치와 같은 인물이란 걸 알게 되자 이 소설은 사실주의와는 발가락 때만큼도 연관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사건의 인과나 개연성이나 논리같은 건 집어던지고 그냥 읽었다. 그닥 읽기 쉬운 소설은 결코 아니다. 2011년 읽었던 소설들 중 엘리아스 카네티의 '현혹'과 더불어 읽는 게 고역인 소설 맨 앞머리에 놓인다.

감옥에 갇힌 친친나트의 독백과 사색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장이자 간수의 딸인 엠모치카와 만나고, 그가 그토록 기다린 아내 마르핀카가 가족들과 면회를 오고, 그의 어머니가 면회를 오고, 새로운 수감자 므슈 피에르를 만나게 된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정상적인 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평범하다 할 인물은 아직 어린 맨발의 소녀 엠모치카인데 이 소녀의 묘사에서 롤리타의 전초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나보코프 본인이 실제 소아성애를 가진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면회를 온 마르핀카의 가족은 죄다 기괴하고 뒤틀려 있으며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친친나트는 아내 마르핀카와 둘만의 대화를 시도하나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면회는 끝이 난다. 이 뒤죽박죽인 세계를 이해하는 단서는 소설 중간중간 흩뿌려지는 친친나트와 그의 어머니 체칠리야C의 대사이다. 

"탄원할 생각은 없습니다." 친친나트가 말했다. "대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 허위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허위의 사물들의 허위의 본질 속에 과연 당신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리라는 것을 보증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단 하나라도 존재합니까?"

지난 30년 동안 손에 만져질 만큼 빽빽한 환영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 있는 실재적 존재라는 사실을 숨기고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발각이 된 지금은 꺼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적어도 당신들 세상의 모든 비실체성을 몸소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가실 때 복도에 있는 시계를 주의 깊게 보시지요." 친친나트가 말했다. "시계의 숫자판은 비어있지만 30분마다 간수가 옛 바늘을 지우고 새 바늘을 그려 넣고 있습니다. 당신은 바로 그렇게 색칠된 시간에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시계 소리는 보초가 내는 것이고, 그래서 그는 보초(보초chasovoy는 '시계의'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농담하지 말아요." 체칠리야 C가 말했다. "알다시피, 놀라운 속임수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아직 어린아이였을 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서도 '네트카'('아니'라는 듯의 net에서 파생된 단어로 여기서는 부조리하거나 무의미한 물건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물건이 인기가 있었어요. 네트카는 특수한 거울과 짝을 이루었는데, 거울은 약간 굽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뒤틀려 있어서 그것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갈라진 틈과 혼란함만이 있었지요. 모든 것은 눈眼 속에서 미끄러져 버렸어요. 하지만 거울의 뒤틀림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었고 그냥 그렇게 맞추어져 있었을 뿐이에요...... 아니면 오히려 그러한 뒤틀림에 맞추어서 선별되었을지도..... 아니, 잠깐만요, 설명을 잘 못하겠네요. 한마디로 당신은 그런 기이한 거울과 여러가지 네트카, 즉 전적으로 부조리한 물건들(무슨 화석처럼 형태를 알 수 없고 얼룩덜룩하고 구멍과 얼룩투성이에 반점과 혹이 있는 물건들)의 수집품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일반적인 물건들을 완전히 왜곡시키는 거울은 이제 소위 진정한 양식을 얻었다고 봐요. 즉 이해 불가능하고 기형적인 대상물을 이해 불가능하고 기형적인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훌륭한 결과가 나타난 거지요. 부정의 부정은 긍정을 낳았고, 모든 것은 복구되었고, 모든 것은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거울을 통해 무정형의 얼룩 천으로부터 탁월하고 조화로운 이미지가 즉 꽃이나 배, 사람, 풍경 같은 것이 얻어진 거지요. 당신 자신의 맞춤 초상화까지도 얻을 수 있었지요. 다시 말해 당신은 악몽과 같이 뒤범벅이 된 무언가를 받았겠지만, 이것 역시 당신이었고, 물론 열쇠는 거울에 있었어요. ...."

허위와 기만의 비실재적 존재들의 세계가 '사형장으로의 초대'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므슈 피에르는 수감자로 친친나트 곁에 다가와 친친나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감옥에 갇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알고 보면 친친나트의 사형집행인으로 기만과 위선의 세계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서커스 피에로같은 존재이다. 감옥 속을 울리는 벽을 긁는 소리에 친친나트는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오는 소리인 줄 알고 잔뜩 기대를 거나 알고보니 그것은 므슈 피에르와 형무소장의 속임수였다. 구원자가 오는 것이 아니라 므슈 피에르의 방에서 친친나트의 방까지 터널을 뚫었던 것. 이런 식으로 피에르는 사사건건 친친나트를 속이고 기만한다. 터널을 통해 억지로 피에르의 방에 초대되어 다녀오는 길에 친친나트는 다른 길로 접어들어 바깥세계로 나가게 되고 그 곳에서 엠모치카를 만나게 되나, 어린 엠모치카가 천진난만하게 손을 이끌어준 곳은 소장과 피에르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소장의 집이었다.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결정되고 처형 전날, 관습에 따라  친친나크는 '외설스럽고 혐오스러운' 시의 주요 관리들이 초대된 부시장의 집을 방문하여 떠들석한 파티에 참석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처형 직전 아내 마르핀카가 감옥으로 찾아와 친친나크를 마지막으로 '위로'해주겠다고 하나 정작 그녀는 친친나크가 보낸 편지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간수들에게 몸을 팔고 돌아간다. 그리고 처형시간, 친친나크는 마차를 타고 그의 집을 지나쳐 '재미있는 광장'으로 가서 처형대에 올라간다.     

읽을 당시 너무 괴롭고 지루해서 어떻게든 끝만 보겠다며 건성으로 읽어서인지 그닥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 독후감을 쓰겠다고 다시 펼쳐 줄거리를 더듬으니 그래도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는 듯하다. 더불어, 친친나크의 최후의 장면이 새삼 어떤 의미인가 다시금 생각케 되고.

나보코프의 삶이 러시아 혁명을 피해 유럽으로 이주한 후 평생을 고향 러시아(당시는 소련이었겠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명자로 떠돈 것이기도 했거니와 본인 스스로 이 소설이 '반(反) 유토피아 소설에 대한 조롱'으로, 이 소설 속의 전체주의 국가는 '정신이 감금된 상태에 대한 극단적이고 환상적인 메타포'로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한다.고 하니 해석에 이견은 없겠다. 창작의 자유를 감금하는,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져야만 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죽음만이 가능한 예술가의 내면을 그려낸 것이라 보면 되겠지. 스탈린 치하 전체주의에 경도된 소련의 상황을 빗댄 것이라 볼 수도 있겠고. 하지만 '내가 쓴 작품 중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형장으로의 초대'이다.'라는 본인의 의견에는 글쎄- 읽는 재미는 확실히 롤리타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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