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풀려서 잔뜩 껴입고 간 것이 무색해졌다. 홍대까지 한참인데다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자 엄청 피곤했다. 꾸벅꾸벅 졸다 틈틈이 책 보다 겨우 도착해서는 친구랑 저녁을 먹었다. 매운 볶음밥이었는데, 먹는 순간에도 괴로웠지만 다음날 뱃속이 계속 불편해서 딱 죽을 맛.
전에 'BShow'를 본 공연장만큼이나 작았다. 그래도 거긴 사람도 적었고, 무대가 높았고, 의자도 놓아져 있어서 보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다. 사운드홀릭은 무대도 낮고 스탠딩이라 앞쪽으로 파고들어갈 열의가 없는 우리로서는 두번째 달 멤버들 얼굴만 동그마니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쯤엔 흥분해서 꽤 앞까지 진출하기도 했으나 그래봐야 가슴팍 정도.
드라마 OST에서나 간간히 이름을 들었을 뿐으로, 주말을 그냥 보내기 싫어 덜컥 신청한 것이었는데 참 재미나게 봤다. 인터파크 협찬의 3부 공연은 게스트 공연만 빼면 만족스러운 수준. 무엇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생소한 Irish 음악 들을 일도 없을 거고 낯선 악기들을 볼 일도 없을 테니까. 아, 아일랜드 전통춤도. 특별히 초청을 해서 이벤트를 꾸민 것인지 4명의 댄서(?)가 마지막 3부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신나게 춤을 춰주었다. 같이 추세요!하고 멤버들이 종용했으나 저 현란한 발차기를 어찌 따라하라는 겐지.
2부 마지막 곡으로 '서쪽하늘에'가 연주될 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이 한 곡을 들으러 간 거나 다름없다. 중아가 환한 대낮에 흔들리며 신호등 붉은 불빛 아래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드라마 아일랜드는 최근 10여년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유일한 드라마인데(어째서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당시엔 국이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봐서 휘청이던 중아가 아주 미웠건만 요즘엔 중아가 매우 그립다.
약간은 어눌하고 순박해 보이는 멤버들의 날 것의 멘트에 잔잔하고 경쾌하게 때로는 아련하게 퍼지는 멜로디. 거기다 기타치는 멤버가 믹키유천과 커피프린스의 하림(난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이미지만 본다면)을 적절하게 섞어 아주 순수하게 빚은 것 마냥 생겨 보는 즐거움까지 있었더랬다. 역시 난 비주얼의 노예.
정보를 찾으려 네이X를 뒤지니 팀 소개나 사진이 내가 접한 것과 다르다. 멤버 교체가 있었던 것인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드럼, 기타, 아이리쉬 휘슬에 아코디언, 벤조에 휘슬, 그리고 바이올린으로 구성된 다섯 멤버의 짜임으로 근사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휘슬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아가씨와 기타치던 우유에 데친 것 같은 총각의 보컬도 꽤나 깔끔해서 근사하더라. 연주음악이라 좀 지겹지 않을까 했는데, 좋았다. 아주.
공연 후 친구랑 신나게 맥주 먹느라 결국 택시타고 일요일 연극을 같이 볼 친구네로 가서 잤다. 잠든 친구를 깨우는데 좀 미안터라.
날씨도 좋고 한 달여 만에 찾는 대학로도 좋고 다 좋았는데 뱃속이 불편해서 체력 및 기분이 저조했다. 그래도 연극은 집중해서 봤다. 자리도 아주 좋았다. 소극장이라 딱히 나쁠 자리도 없었다만은.
'살인의 추억'을 워낙에 재미나게 봐서 원작인 '날 보러와요'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같은 내용을 다른 형식의 예술로 어떻게 풀어낼까. 매체 바꾸기라던가 장르 바꾸기 관련 수업을 가끔 하는데, 이거야말로 실례니까. 영화에서 엔딩컷을 장악하던 황금들판도 없고, 빗속의 논두렁도 없지만 경찰서 내부와 취조실 두 곳만으로 매끄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연극에서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가세해서 공간적 재미를 인물간 관계의 다양성으로 메꾸는데 그런 점도 흥미로웠다. 카메라 기법을 통한 속도감이나 박진감 대신 배우의 대사전달력과 조밀한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점도 놀라웠다. 이래서 연극배우 출신 어쩌구 하나보다. 다만 신문기자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너무나 연극적이라 그 과장됨이 극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캐릭터 자체도 비호감이고.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목소리가 작아 꽤 빠른 속도로 많은 대사를 전달하는 것에 초반에는 따라가기 어려운 감도 있었다.
연극과 영화는 주요 인물 설정은 비슷하나 캐릭터 수립이 매우 다르다. 개인적으로 조형사역을 맡은 배우가 인상적이었는데, 역시나 잘생겼기 때문이다. 영화의 김상경 역할의 김형사는 기본 설정은 같지만 영화와 연극의 질감이 다르다. 어느 쪽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김상경 쪽에 한 표. 송강호 역은 글쎄... 내가 보기엔 연극의 조형사의 비중에도 밀리는 것 같다. '밥은 먹고 다니냐'의 송강호 포스엔 말할 것도 없다. 매꼬롬한 박해일도 그렇고. 연극의 용의자는 작고 왜소한 이미지가 강해서 조금 포스가 약하더라. 물론, 1인 3역을 하며 변신을 하는 모습은 감탄스러웠지만. 영화에서 수사과장(?)은 거의 기억에 안 남는데 연극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수사과장이었다. 무게감 있게 전체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었다.
전체적인 재미는 영화 승.(봉준호 감독은 천재 맞다.) 그렇지만 연극적 구성과 연기력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그런데 주말에 본 것 중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 묻는다면 위의 둘이 아닌 '뜨거운 녀석들'. 작년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못 구해서 못 보다가 공을 좀 들여 구해서 계발활동 시간에 봤다. 애들은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나 혼자 박장대소하며 즐거워라했다. 아주 유쾌하다. 영화에서 언급된, 혹은 되지 않은 패러디된 영화들을 본 적이 있었더라면 더 즐거웠을텐데. 그게 유일한 아쉬움.
그나저나 이틀을 공연으로 달렸더니 체력도 후달리고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를 소비적으로만 풀고 있는 것 같아 못내 찝찝해졌다. 생산적인 해소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대로는 체력도 경제력도 버티지 못할 게 틀림없다.


덧글
깽 2007/12/02 17:23 # 삭제 답글
둘 다 나도 봤던 공연들이라..흐흐~ 댓글을 달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두번째달 바드 공연이 한 3주 전쯤 부산에서 있었는데
작정하고 보러갔었지.. 지난번 경대에서 했었는데 놓쳐서 아쉬웠거든
우린 같이 춤추고 놀았다는.. >.< 현란한 발짓은 안 했고.. 그냥 다들 흥에 겨워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어설프지만 함께..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당~
이름이 정훈이던가.. 내 친구도 기타리스트에 열광하더구먼..
난 여자 보컬 해리 언냐(?)가 더 좋더라.. 싸인 받아 기뻤다..
내가 하림군 앨범을 다 가지고 있는데.. 게스트로 하림이 와서
사진 찍고 난리였다~ >.<
날 보러와요 는 나 역시 조금은 김 빠진 느낌으로 봤당..
살인의 추억보다 먼저 봤음 좋았으련만 싶더라..
나도 너무 좋아하는 영화라 자꾸 비교를 하면서 봐서...>.<
해효~아즈씨가 나름 카리스마 넘치긴 했다만...
이 공연은 본 지가 한 1~2년은 넘었겠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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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am2 2007/12/02 23:57 # 답글
다 필요없고, 뜨거운 녀석들.흐흐- 잘 지내지. 여기 엄청 춥다ㅜ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