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1984. 너무 익숙한 작품이라 외려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으니 애써 활자로 읽고 싶은 욕구도 떨어지고. 그래서 부러 조지 오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골랐다.'지식채널e'에서 조지 오웰을 다룬 편을 본 적이 있는데(제목은 지켜지지 않은 유언)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달라서 좀 놀랐다. 동물농장이나 1984 모두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어서 폐쇄적이고 염세적인 인물일거라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책도 안 읽어 놓고서.
실제 오웰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행동력 있는 인물임이 보여진다. 자본주의진영에서 그가 소련 스탈린주의의 전체성에 대해 비판한 것에 초점을 맞춰 그를 반공산주의 작가로 몰아간 것과 달리 그는 오히려 좌파적이었고 공산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기도 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그가 스페인 내전에 통일노동자당 의용군으로 참전하여 겪은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르포르타쥬, 현장문학이라 불리는 모양인데 중간중간 작가의 적극적 해명(?)과 정치적 논해가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왜 이렇게 무식한 거냐. 그 유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나? 이것 역시 읽지 않았으니 모른다. 나로선 이번 기회에 작가 조지 오웰과 더불어 스페인 내전을 이리 자세히 알게 되어 감사할 따름.
1930년대 우리나라가 한창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있을 때 저 건너 스페인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무정부주의가 시험받고 있었다. 이에 종군기자로 기사나 써볼까 스페인에 갔던 오웰은 그 길로 의용군에 자원 입대하고 만다. 그것이 해 볼 만한 유일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에. 당시 스페인은 (책에서 얻은 짧은 지식으로 정리를 하자면) 오랜 왕정을 무너뜨리고 혁명 인민정부가 들어선 상태에서 프랑코를 위시한 파시스트들이 쿠테타를 일으켜 한창 내전중이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배후에 두고 일어선 파시스트 세력에 대항하여 내전을 벌이는 인민정부를 돕고자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거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다. '마냐냐'로 표현되는 스페인 사람들의 특성상 또한 당시 농업국가였던 스페인의 국가적 상황 때문에 내전은 한심할 정도의, 코메디 영화 소재로 써먹기 딱 좋을 만큼 지리멸렬한 소모전을 반복하지만 당시 스페인은 평등의 기치 아래 모인 이들과 노동계급들의 순수성과 정의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 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똑같은 옷을 입었고,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의 등을 툭 치며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했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모든 의용군이 위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물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명령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임을 인식했다. 장교도 있고 하사관도 있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사적 계급은 없었다. 계급 명칭도, 계급장도, 뒤꿈치를 소리나게 붙이며 경례를 하는 일도 없었다. 의용군 내에서 일시적이나마, 계급 없는 사회의 산 표본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나는 우연히 정치적 의식과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정상으로 취급되는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 문명화된 생활의 여러가지 일반적인 동기들, 예컨대 속물 근성이라든가, 돈을 악착같이 벌어 모으려는 태도, 상관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 그곳에서는 농민과 우리만 있었다. 누구도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한 국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만큼은 지속되었다. ... 우리는 냉담과 냉소보다 희망이 더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공동체, <동지>라는 말이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허위가 아니라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 스페인 의용군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일종의 계급 없는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아무도 자기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는 공동체,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특권이나 아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사회주의의 서막을 막연하게나마 감지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것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대신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의 수립을 갈구하는 내 욕망은 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 되었다.
그러나 인민정부는 복잡할 정도의 내부 균열에 빠져있었다. 오웰이 참가한 통일노동자당 외에 전국 노동자 연맹, 무정부주의, 통일사회당, 전국 노동자 총연합, 공산당 등등등. 오웰이 속한 통일노동자당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것은 물론 프롤레타리아 혁명까지 완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인민정부의 주축인 통일사회당은 내전을 종결짓기 위해 혁명은 미루고 파시스트들을 먼저 제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당시 파시스트 반대편에서 스페인 인민정부를 지원했던 소련의 공산당은 자본주의 주변국의 정세와 일국사회주의라는 당노선에 의해 통일노동자당과 무정부주의자들을 트로츠키주의자, 파시스트로 모함하며 탄압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에서 보이듯, 저토록 사회주의 실현을 바라마지 않았던 오웰과 통일노동자당에 있어서 공산당의 그런 행위는 믿었던 도끼가 발등 찍는 것은 물론 등 뒤에서 칼을 꽂는 배신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온통 왜곡되고 날조되는 내전상황과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반파시즘, 혁명을 위해 싸웠던 동지들의 구속, 수감, 처형에, 부상으로 간신히 목숨만 건져 스페인을 빠져나온 오웰은 분노에 가득 차 카탈로니아 찬가를 집필하게 된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들의 승리로 돌아간다. 짧은 시간의 평등은 사라졌다. 당시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의 공산당이 보여준 행보는 이후 소련의 스탈린주의가 자행한 독재를 예견하게끔 한다. 평등 아래 전장에 투신했던 오웰로서는 그 평등의 가치를 위조하고 무너뜨리는 공산독재가 끔찍하리만치 혐오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과 비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독재에 대해 저항한 것이고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년은 그런 의미로 읽혀져야 한다.
복잡한 정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생소한 정당 이름이 부지기수로 등장하는 탓에 까다롭게 읽혔을 법도 하지만, 의외로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도 오웰의 재치있는 글솜씨 덕분이 아닌가 하는데 심각한 상황에서도 위트있게 묘사하는 그의 필력에 오히려 킥킥대며 읽을 수 있었다. 재치 넘치는 빈정거림은 수준급. 특히나 느긋한 스페인에 대한 작가의 호의적이고도 유머러스한 표현은 스페인은 물론 작가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켰다. 스페인도 너무너무 가보고 싶고, 오웰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달까. 그래서 지금은 열심히 1984년 읽는 중.
인간의 자유와 존엄과 평등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것이 배반당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분노. 그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하는 글.
나는 그 순간까지 몰랐다.
끌려가면서도 비 고인 웅덩이를 피해 가는 발걸음.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남자는 우리와 똑같이 살아있다.
부당한 권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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