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지는 꽤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보니 이제야 독후감을 쓴다. 그 사이 물리적인 시간의 지침은 2009년으로 바뀌어 있다.작년 한 연수에서 출석 잘했다고 상으로 받은 책이다. 여러 선택지의 책들 중 엉겹결에 빼들었는데 꽤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차 대전 일본군 소년병이었던 글쓴이가 전쟁과 평화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책은 먼저 참혹하게 실패로 끝난 태평양 전쟁, 지금 돌이켜 보면 패할 것이 분명한 그 전쟁에 일본이 어찌하여 빠져들었는지를 반추하고 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우리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 전쟁의 일환으로 우리는 일제 침략 36년을 겪었다. 그 고통과 분노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고, 국제 정세가 점점 더 국수적, 경쟁적이 되어 갈수록 양국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어째서 일본이 그토록 무자비하고 비인도적인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분석은 그닥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그저 일본은 나쁜 놈, 반성할 줄 모르는 놈들일 뿐이다. 허나, 서양문물을 우리보다 먼저 받아들였고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상가도 많았던 당시 일본이 그저 이기적인 마음에, 원래 민족성이 형편 없어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단순화시켜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이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너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이 없이, 무조건 나쁜 놈으로 상대방을 몰아부치다가 우리가 상대편의 꼴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유사한 사례가 베트남전에서 있기도 했고.
의문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 얻을 수 있다. 당시 일본의 상황과 사람들의 심리가 어떠했는가가 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변명이나 자국옹호가 아닌, 잘못에 대한 냉정한 원인 분석의 시각으로 당시 일본의 정치 상황, 진보적 사상의 곡해, 통제된 언론에 호도된 여론, 잘못된 판단, 그 판단의 오류를 인정하지 못함으로 얻어진 참담한 결과가 해명된다. 아직까지 일본에 대한 경계와 반발로 일본사나 일본문화에 대한 연구와 개방은, 학계에서는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듯 하다. 기껏해야 일본 대중문화의 자극적 부분이 유입되는 것뿐. 그런데 책을 읽으며 우리는 예전 일본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잘못된 역사를 엄정히 살피고 그것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내 잘못이든, 네 잘못이든.
글쓴이는 자국의 태평양 전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전쟁의 폐해를 겪고도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베트남 전쟁, 미군의 쿠바 침공, 소련과 동유럽, 미국과 소련의 냉전, 무수히 많은 인종, 종교 전쟁, 아프가니스탄전을 살펴보며 전쟁의 원인, 그것의 어리석음에 대해 낱낱이 짚어준다.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게, 쉬운 언어로 설명하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현대사가 말끔하게 정리된다. 헌데 읽다보면 인간은 전쟁을 그치지 않는, 그칠 수 없는 존재인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글쓴이가 냉정한 현실 제시만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제목처럼,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수많은 전쟁터를 되짚어 왔다.
인간이 흉포해지는 것은 전쟁 대문에 자신과 동료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거나, 상대방은 나쁘기 때문에 혹독한 꼴을 당해도 싸다고 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휘말리거나, 폭력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칭찬을 받거나 신분이 올라가는 등 이득을 얻는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경우이다.
글쓴이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걸핏하면 '그건 네 충성심이 부족해서 그런거야'라고 선생에게 혼이 나자 억울함에 자신의 충성심을 입증해 보이려고 소년병에 자원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쓸데없는 노역들만을 요구했고 전쟁은 결국 패했다. 패전을 외치기 전 천황과 일본 군대에 대해 칭찬만을 늘어놓던 언론은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 혼란한 상황에서 전쟁이 무엇인지, 어린 소년병은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소박하지만 가장 절실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다니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장래 좋은 직업을 얻어 편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이 세계에서 전쟁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평화를 위한 학문, 평화를 위한 학습을 일구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평화학. 모든 것은 뿌리에서부터 바뀌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정치가와 학자들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 않은 국민이 그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가를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만약 자신의 나라만 득이 되면 약소국이든 뭐든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만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을 반성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 역시 똑같은 사고를 하는 정치가를 선출하게 될 것이고 다른 나라와도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도자 잘못 뽑아 고생하는 어느 나라에 몸담고 있는지라 뼈저리게 와닿는군. 일케 말하면 나 잡혀가는 거?ㅜ ㅜ
덧붙임>>
1/ 중,고등학생용으로 알맞다. 일본식 말투가 조금 어색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일본의 과오를 일본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경험이 될 거다. 물론, 중고생뿐 아니라 현대사에 약한, 평화에 관심 있는 사람 누구에게라도 적극 추천.
2/ 새해 벽두부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보고 있자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해진다. 슬프다.
at 2009/01/13 23:19


덧글
강호동 2009/08/17 17:43 # 삭제 답글
좋은 글입니다.꼭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쓰시는 분의 글같네요 ㅎㅎ( 칭찬입니다.)
zzam2 2009/08/19 20:54 # 답글
^^ 칭찬 감사합니다. 책은 제 글보다 더 좋습니다.검둥소 2009/11/06 16:14 # 삭제 답글
리뷰 감사합니다.^^ 검둥소 블로그에 담아갑니다.^^http://blog.naver.com/geomdung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