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황금 물고기


시간 여유가 생겨서 학교도서관엘 갔더니 푹푹 삭은 책냄새가 진동한다. 어둡고 좁고 제멋대로인 도서관. 서가 배열이 눈에 익지 않아서인지 맘에 드는 책을 못 찾아 아무거나 골랐다.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

그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의 책은 '조서'가 더 끌렸는데 도서정리 문제로 대출이 안되더라. 이쪽은 어째 표지도 심심하고 제목도 밋밋해서 별로 구미가 당기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같은 작가니까 에잇,하고 읽었다. 

납치당해 팔려온 흑인 소녀 라일라. 한쪽 귀는 귀머거리. '밤'이라는 뜻에 걸맞게 피부도 검고 그녀의 삶도 어두컴컴하다. 태어난 곳은 아마도 아프리카 팔려온 곳은 아마도 아랍. 에스파냐계 유대인 랄라 아스마와의 짧은 안락이 끝나자 그녀의 정처없이 떠도는 삶이 시작된다. 홍등가인 자밀라 아줌마네서 도둑질을 배우고 아벨과 조라의 집에서 학대당하고 타가디르를 버리고 후리야와 함께 프랑스로 밀입국. 파리에서 노노를 만나고 하킴을 만나고 엘 하즈를 만나고 시몬느를 만나고 주아니코와 니스로 떠난다. 니스에서 새라를 만난 뒤 잠시 파리로 돌아와 자신이 혼자임을 또 다시 깨닫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보스턴에서 장 빌랑을 만나고 시카고로 건너가 르로이를 만나 음반작업을 하고 벨라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길에 뇌척수 계통의 열병을 앓고 장의 아이를 유산한다. 샌버너디노에서 나다를 만나고 비벌리의 마운트 자이언을 거쳐 니스로 돌아와 이번에는 남으로 향한다. 그렇게 하여 라일라는 품-즈귀드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그녀는 힐랄의 아이로서의 자신과 초승달 부족의 땅과 그 곳의 여인을 마주한다. 흠.

열 살 남짓한 나이에서 스무살 남짓한 나이까지 한 흑인소녀가 자신의 정체성과 고독을 확인하기 위해 대륙을 건너며 표류하는 이야기다.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쉬지 않고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라일라를 보기만 하면 껄덕대는 남자들로 보아 예사 물고기가 아니라 황금 물고기가 맞는 듯도 하고.

하지만 그녀의 인생역정에 공감하기도 감동하기도 쉽지 않다. 그녀의 나이도, 그녀가 속한 시대도, 그녀가 존재하는 사회도 내게 구체적이거나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 먼 이국의 옛일이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무수히 많은 다른 소설들은 어찌 읽을 수 있겠나.
번역 탓인지 작가 탓인지 모르겠지만 묘사는 불충분하고 서사는 매끄럽지 못하다. 라일라의 10여년의 세월을 고대로 카메라로 찍은 다음에 중요 부분을 적당히 균일한 시간배분으로 편집해 짜깁기한 느낌. 그녀의 삶을 전체적으로 훑어내고 있지만 이야기에는 강약이 없고 사건에는 감정이입할 여유가 없다. 무수히 많은 장소가 교차되는데 상상할만한 묘사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라일라의 감정상태는 무미건조하게 서술되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동조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그녀에게서 발견할 수 없어서 나는 좀 당황했다.

프란츠 파농의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란 책을 품고 다니며 니체의 '선과 악을 넘어서'를 읽는 반면 안정된 삶이나 미래 계획에 대해서는 무지한 라일라. 남성의 폭력에 민감하면서도 남자에게 기대는 라일라. 도덕적 윤리감에 전혀 얽매이지 않으며 사회적 위신이나 삶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어찌보면 자기자신을, 자신의 삶을 내팽개친 듯이 보이는 라일라.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회에 대한 의식, 삶의 주관이 뚜렷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의 부초같은 삶이 팔려온 신분이자 불법체류자라는 사회적 상황에 의한 것인지 그녀 자신의 성향에 의한 것인지 소설은 친절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그녀는 헤매고 되는대로 뒹굴고 이집저집 전전하며 한마디로 막 산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고 저항도 아니며 그렇다고 억압받는 자의 처절함도 아니다. 그 애매모호한 무경계성과 소설의 불친절한 서술이 읽는 내내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 불친절한 서술이 오히려 라일라의 삶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만은.

서구의 집시, 히피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일까. 아님, 유럽사회의 불법체류자 상황에 대한 이해부족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단하게 고정된 삶에 내가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는 탓일까. 떠돌이처럼 정착하지 못하는 라일라의 삶에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녀는 어째서 파리에서 안정된 삶을 찾고 대학에 가려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음반을 발표하고 나서 재즈가수로서 활동에 매진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 그토록이나 중대한 문제였었나. 그렇다면 어째서 애초에 목적지를 그곳으로 정하지 않았나. 그녀가 목표로 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아니, 삶을 반추하고 계획하는 의식 자체가 있긴 한걸까.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그녀의 성장기. 그래도 소설의 말미에서 라일라는 나름 끝맺음을 한다.

이제 나는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름을 떨친 나의 조상 빌랄처럼, 노예였다가 예언자 마호메트가 속박에서 풀어주고 세상으로 내보낸 그 사람처럼, 드디어 나는 또 하나의 빌랄 족이 되어 부족의 시대에서 벗어나 사랑의 시대로 들어선다.
 
솔직히 그동안은 그럼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인지, 부족의 시대는 뭐고 사랑의 시대는 뭐란 말인지, 여전히 불만족스럽지만 치어가 성어가 되는 그 몸부림을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인도, 아랍인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될 수 없었던 불명료한 정체성과 안주할 공간 없이 떠돌아야만 했던 삶, 자유분방하며 그 무엇에도 복종하지 않는 순수함과 두려움 없는 강인함. 그 모든 것을 뒤섞은 채 헤매었던 한 소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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